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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82년생 김지영 김나정 아나운서

29일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82년생 김지영을 본 뒤 여자로서 불편했다는 후기를 전했다.

그는 책은 못 읽고 영화를 봤는데 "페미니즘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왕 여자로 태어나 살면서 이 영화처럼 남자, 여자가 불평등하고 매사에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살면 너무 우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여자로 살면서 충분히 대접받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것들도 너무 많은데 부정적인 것들만 그려놓은 영화 같다고 평하고 여성을 온통 피해자처럼 그려놓은 것 같아 같은 여자로서 불편했다고 말했다.

김나정은 여자의 행복은 직장 생활에서 남자직원이 잘 대해주는 것, 해외여행에서 짐을 들어주는 것, 문을 열어주는 것, 맛있는 밥을 사주고 선물도 사주고 예쁜 곳에 데려가 주고 예쁜 옷을 많이 입는 것 등이다.

김나정은 남녀관계에서 똑똑한 여자는 남자에게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걱정해주고 애교 있게 안아주면 그게 관계에서 오히려 현명하게 남자를 다스리고 예쁨 받고 사랑받는 방법이라며 페미니스트들은 여자의 권력을 모르는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로 태어나서 좋은 점을 보고 행복하게 사는 게 나는 좋다. 매일 부당하고 불만이고 화가 나는 기분으로 나는 힘들고 우울해서 못 살 것 같다. 예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하루하루가 모든 것이 예쁘게 보이고 행복하다고 마무리를 지었다.

김나정은 프리랜서 아나운서인 그녀는 OBS 경인TV 김구라 문희준의 검색녀'에서 '품질보증녀'로 패널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또한 맥심에서 주최하는 미스맥심 선발대회에 출전해 과감한 란제리, 비키니를 선보였다.

한편 페미니즘은 불평등하게 부여된 여성의 지위, 역할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여성운동이다.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페미니즘이란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나 사상을 뜻한다.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페미니즘을 현실에서 실천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을 성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일반적인 여성관을 비판하고, 남성과 동등하게 여성의 자기인식과 기회를 넓히려고 노력한다. 또한 모든 공적인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는 목표를 가지고
19세기에 미국과 영국에서 벌어진 여성참정권 운동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페미니즘 정치적 활동가들은 주로 재생산 권리(낙태를 결정할 권리, 낙태에 대한 법적 일부 제한의 제거, 피임에 대한 접근), 가정폭력, 임산부 휴가(maternity leave), 여성에 대한 동등한 임금, 성추행, 차별과 성폭력 등에 관심을 가졌다. 페미니스트들이 연구하는 분야는 가부장제, 편견, 성적 대상화와 억압 등이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페미니즘의 주축은 스스로 모든 여성의 대표라 여기는 서양 백인 중산층 여성의 문제만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다양한 제3세계 등의 페미니즘 사상가들은 '여성'이 균질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개인들의 그룹이라는 전제를 문제시하였다.

한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개화기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여성단체를 조직한 것에서 시작한다. 개화기 여성운동은 여성의 교육권 보장과 남녀의 교육 기회 균등을 중심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진행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며 1920년대 한국의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사회주의, 기독교 페미니즘 등 다양한 갈래로 나뉘었다. 

조선 최초의 본격적인 여성운동 조직은 1927년 탄생한 '근우회'로 꼽힌다. 근우회는 근우 선언문에서 “조선에 있어서는 여성의 지위가 한층 저열하다. (중략) 우리의 앞길이 여하히 험악할지라도 우리는 일천만 자매의 힘으로 우리의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려 한다. 여성은 벌써 약자가 아니다. 여성은 스스로 해방하는 날 세계가 해방될 것이다. 조선 자매들아 단결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1928년 중반 이후 운동 노선상 갈등으로 기독교 여성들은 근우회를 탈퇴하고 독자적 노선으로 들어섰다. 한편, 이 시기 여권운동을 선도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는 나혜석(1896~1948) 등이 있다. 

이후 여성운동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으로, 한국의 선구적인 여성운동 단체로 꼽히는 '한국 여성의 전화'가 1983년 설립되어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에 대한 '반성폭력운동'을 이끌었다. 1987년에는 한국여성민우회가 창립됐고, 이 시기 반성폭력운동의 결과로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고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는 2001년 1월 여성부로 격상됐고, 2010년에는 여성부를 개편해 여성가족부(여가부)가 발족했다. 

2000년대 초반 페미니스트들은 호주제 폐지 성과를 이뤄냈다. 2000년 9월 137개 여성 및 시민사회단체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발족해 호주제 위헌소송을 준비했으며, 2005년 호주제 폐지를 중심으로 한 민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헀다. 

새로운 조류를 타고 페미니스트들은 다양한 배경에서 출현하였으며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젠더·섹슈얼리티와 타 사회 정체성들, 이를테면 인종이나 계급의 교차점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으로 나아갔고, 사회적 계급과 인종, 문화와 종교에 기반한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추구하였다. 이에 페미니즘은 문화적으로 지역화되었으며, 해당 사회의 여성에게 중요한 문제를 대하고(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여성 할례, 선발 자본주의 경제의 유리천장 현상), 특정 현상들(이를테면 강간, 근친상간, 모성)이 보편적인 이슈인지를 토론하였다. 2006년 현재, 수많은 여성주의 정당이 존재한다.
김나정 아나운서 프로필 인스타 페미니즘 82년생 김지영